북미 배터리 산업 재편 (보조금 폐지, 합작법인 해체, ESS 전환)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전환되면서 새로운 기회와 동시에 예상치 못한 딜레마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테슬라와 중국 업체들이 주도하는 SDV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은 하드웨어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히 구독 서비스 확대, 하드웨어 내구성 딜레마, 표준화 경쟁이라는 세 가지 핵심 과제는 SDV 시대의 성공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전망입니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는 피처 온 디맨드(Feature on Demand) 방식의 구독 서비스입니다. 차량에 하드웨어는 미리 장착되어 있지만 특정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월 구독료를 지불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테슬라는 2025년 2월부터 FSD(Full Self-Driving) 시판 판매를 중단하고 월 99달러의 구독 서비스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BMW는 2022년 시트 열선과 스티어링 열선을 월 구독료로 제공하려다 소비자 반발로 철회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구독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소비자의 예측 불가능한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처럼 한 번 가입해두고 잊어버린 채 몇 년간 비용이 청구되는 경우가 자동차에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차량 구매 비용은 별도이고, 커넥티비티 서비스에 월 9,000원 정도 내던 것이 다양한 주행 보조 기능, AI 비서, 자율주행 기능 등으로 확대되면서 월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까지 누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는 스마트폰과 달리 장기간 사용하는 내구재입니다. 10년 이상 운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기간 동안 구독료가 쌓이면 결국 차량 구매 가격을 넘어설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량 판매 가격과 별개로 전체 소유 비용(Total Cost of Ownership)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는 SDV의 가장 큰 약점이자, 소비자 저항을 불러올 수 있는 핵심 요인입니다.
차량 구독 서비스 자체도 시장에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 자체를 구독하는 모델을 시도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차량을 소유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구독으로 차를 바꿔 타는 것보다 본인의 차량에 익숙해지고 설정을 맞춰두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SDV 시대의 구독 모델이 성공하려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명확한 가치 제공과 합리적인 가격 설정이 필수적입니다.
SDV의 또 다른 역설은 소프트웨어는 계속 업데이트되지만 하드웨어는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스마트폰의 경우 2~3년이 지나면 성능 저하나 디자인 피로로 교체 욕구가 생기지만, SDV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기능을 계속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입니다. 소비자는 "소프트웨어는 최신인데 하드웨어는 10년 전 디자인"이라는 괴리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량 전문가들은 이를 SDV의 새로운 단점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고가의 내구재이기 때문에 쉽게 교체할 수 없지만, 디자인과 하드웨어에 대한 싫증은 피할 수 없습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이 매년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을 앞세워 신차를 출시하는 상황에서, SDV 기반 차량의 소유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업체들은 모듈형 하드웨어 교체나 내외장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디스플레이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만 교체하거나, 외장 패널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구조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고, 결국 SDV의 경제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드웨어 성능의 한계도 문제입니다. SDV는 중앙 컴퓨터와 조널 컴퓨터 3~4개로 차량을 제어하는 구조인데, 출고 당시의 하드웨어 성능이 5년, 10년 후의 소프트웨어 요구사항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AI 모델이 고도화되고 자율주행 레벨이 올라갈수록 연산 능력과 메모리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정 시점이 되면 하드웨어 업그레이드가 불가피하고, 이는 소비자에게 또 다른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SDV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표준화 경쟁이 치열합니다. 한국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 주도로 현대차, 삼성전자, 네이버 등이 참여하는 SDV 표준화 협의체를 구성했습니다. 이는 각 기업이 제각각 개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서로 연동 가능하고 재사용 가능한 공동 규격을 만들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수백 개 기업이 참여하는 거대한 표준화 연합체를 운영하고 있고, 유럽도 유럽 연합 단위로 별도의 표준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결국 SDV 표준화는 또 하나의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표준을 만들고 공동 개발을 해도 실제 수요처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점입니다. 중국은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연계로 개발된 기술을 즉시 시장에 적용하지만, 한국은 세금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을 누가 사용할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강점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 제조 능력과 반도체, 배터리, 자율주행 센서 등 SDV에 필요한 모든 핵심 부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량용 메모리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LG전자와 현대모비스는 차량용 전자 부품에서 강점을 보입니다. 특히 피지컬 AI(Physical AI) 분야에서는 한국의 제조 역량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보스톤다이내믹스를 인수하고 로보틱스 전문가들을 영입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하지만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SDV 시대의 성공은 결국 소비자가 지갑을 열게 만드는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 업체들은 차량 내 AI 비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생활 밀착형 서비스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공격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서비스 R&D를 강화해 소비자 경험 중심의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하드웨어 우위를 유지하면서도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SDV 전환은 자동차 산업의 필연적 흐름이지만, 구독 피로도, 하드웨어 노후화, 표준화 경쟁이라는 복합적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합리적인 비용 구조를 설계하며,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입니다. 기술 중심의 낙관론을 넘어, 현실적이고 사용자 중심적인 전략 수립이 시급합니다.
[출처]
그래픽으로 만나는 경제 토크쇼/매일경제TV: https://www.youtube.com/watch?v=xifEOjQAQiw